소식

DASOMI FOUNDATION
다솜체험담후기 다솜체험담후기
다솜체험담후기
[간병사] 김금숙_아름다운 인연으로
  • 작성자
    김금숙
  • 작성일
    2016-09-19 20:53:38
  • 조회수
    2416

아래의 글은 [광주지역사업단 - 조선대학교병원 김금숙 간병사]께서 보내주신 체험수기입니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며 취해 있을 때 유리창 밖 소나무는 몸에 쌓이는 눈의 무게가 힘들다고 나에게 속삭이듯 말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의 삶의 무게이리라.

사계절 속에 우리의 삶 또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자연의 한 조각들인 것을……

어느 날 88세 어른신과의 만남은 유방암수술을 하신 지 3일 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신경과와 중환자실을 거쳐 재활의학과의 협진으로 우리병실에 오셨다. 오른쪽 편마비와 언어장애로 소통할 수가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가 항상 하고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무엇을 원하는지 어떠한 불만이 있으신지 알 수가 없으니 계속 소리만 내고 낯선 탓인지 고개를 흔드시기만 하신다. 연하곤란으로 인하여 식사는 경관식이 들어오는데 식사 때마다 먹지 않겠다고 거부를 하시며 손사래를 치고 실랑이를 하게 된다. 식사 후 드시는 약도 먹지 않겠다고 하니 어린아이 달래듯이 설득해 가며 4~5회를 나누어 드리곤 하는데 많이 뱉어버리신다. 소변 또한 나오지 않아 4시간마다 CIC를 하여 소변을 빼내곤 하는데 어르신의 거부감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때로는 우리의 이름표를 가리키며 이름을 반복해서 읽어볼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언어가 돌아올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기도 하였다.

어르신에게는 무남독녀 외동딸인 상냥하고 친절한 유진 씨가 있는데 어머니와 50년을 함께 살았다고 했다. 혼자 돌보기엔 너무 힘들었는데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으니 항상 고맙다고 하였다.

갑작스레 일어난 모든 상황들이 너무 충격이었을까? 밤이면 잠을 못 주무시고 가슴을 치며 말씀을 반복하시지만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으니 애가 탈 뿐이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전기치료를 하루 4~5회 하는데 사랑하는 딸 유진 씨의 간절한 마음과 정성과 사랑, 그리고 의료진과 모든 사람의 진심어린 사랑의 치료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호전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는 시간들이었다.

“아이고, 아파라! 아이고, 나 죽을 것 같아! 등짝 좀 두드려 줘 바.(등을 톡톡 두들겨 주고)”

며칠째 계속되는 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음식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을 하였다. “왜 내 심장이 왜 숨을 쉴 수 없느냐.”고 또 “내가 뭘 잘못 했느냐.”고 “하룻밤이라도 편안히 누워 잠을 잘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면서 반복되는 호흡곤란과 계속되는 금식으로 영양제가 식사가 돼 버렸다. “훌쩍 훌쩍……” 또 “왜 우느냐.”고 하면 너무 내 인생이 슬프다면서 “내 나이를 생각하니 인제 58인데 지금까지 고생만하고 살다가 이제 조금 편하게 살겠다 싶으니 죽을병(심장병)에 걸렸지 뭐야. 왜 하필나인지 수많은 사람 중에 아무 죄가 없는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지. (엉엉엉) 하느님이 원망스럽다. 김 여사!(눈물) 선생님! 진통제 좀 주세요.” 통증과 기침과 계속되는 오한으로 반복되는 기나긴 밤은 지독한 항생제와의 무서운 싸움이다.

“내가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소?”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교수님께 물으면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흔드신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앉아죽을 수는 없소! 나를 살려줄 수 있는 병원으로 가겠소!”라며 13일째 되던 날 구급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떠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살 수 있어.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실 거야.”라는 희망을 꿈꾸며 기도하는 걸 보는 내 마음도 슬펐다.

2주간의 짧은 인연 속에 마음을 아프게 하고 숨소리를 죽여 가며 흐느끼는 목소리가 그녀가 떠난 후에도 내 귓전에서 오랫동안 맴돈다.

우리는 항상 건강함에 감사할 줄 모르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삶을 영위하다보니 덧없는 세월에 욕심을 부리곤 한다.

나는 매일 출·퇴근 시간이면 응급실과 장례식장 앞을 지나가게 된다. 제1·제2·제3분향소 앞에 각각 적힌 고인의 이름 석 자. 어떠한 삶을 살다가 어떠한 아픔으로 이 생을 마감하셨을까?

예쁘게 꽃단장을 한 리무진과 국화꽃 버스가 떠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이승에서의 그림자와 같은 인연으로 모든 사연을 석자의 이름 속에 그리움으로 묻고 이승을 떠나야 함을……

잠시 깊은 상념에 잠겨 나 이렇게 홀로서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아마도 먼 미래에 막연히 찾아올 두려움 같은 것일까?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 있기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

“어떤 이름은 세상을 빛나게도 하고, 어떤 이름은 세상을 슬프게도 한다.”고 어떤 가수는 노래를 하였다. 인생은 순리대로 살아가는 법, 억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은 진리이다.

당신들도 나이를 먹어보라며 젊음은 한때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벌은 꽃에서 꽃을 따지만 꽃에게 상처는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꽃을 도와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꽃과 벌 같은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엔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오늘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생의 시간들이라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겠는가?

후회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 아쉬운 마음, 내일이 없는 그리움……

그래서 더욱더 소중한 오늘 이 시간들……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으로 마음을 담아 따스한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다솜이 재단이 있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