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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사] 장곡휴양림과 소아암 병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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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4-05-21 09:34:36
  • 조회수
    2770

을씨년스럽게도 추운 겨울이다. 수련회를 떠나기 전날 밤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괜스레 걱정스럽고 불안하다. 다음날 눈은 그쳤지만 여전히 춥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눈 쌓인 군위 장곡휴양림에 도착해보니 추운 날이었지만, 마음은 들뜨고 기분이 상쾌하다. 짐을 풀고 준비해 간 음식으로 배불리 먹은 후 수련회의 활동을 시작했다.

어떤 토론을 할지, 아니면 오락 활동을 할지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궁금했다. 팀장님이 도화지를 건네신다. 다들 한해를 돌이켜보고 좋았거나 즐거웠던 일, 가슴 아리도록 힘들고 슬펐던 일들을 떠올려보고 그래프를 그려보라고 하신다. 차례로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서로 같이 울고 웃고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많은 동료애를 느꼈다.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었던 자리는 더할 수 없이 기쁘고 좋은 시간이었다.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우리 팀장님의 격려, 따뜻한 위로의 말씀이 너무나 감사했다. 동료끼리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다독거리며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잠시 휴식 후에 가면 만들기 작업을 했다. 두 사람이 짝이 되어 상대방의 얼굴에 석고붕대를 부쳐 가면서 정성껏 열심히 만들었다. 예쁘게 된 것, 코와 입이 삐뚤삐뚤 한 것 등 각기 다른 모양의 가면이 완성 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조용히 타는 초를 바라보면서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한해를 마무리 짓는 의식을 시작하였다. 후회와 번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모든 것을 잊고 밝아오는 새해의 희망과 포부를 각자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써보라신다. 몇 개월 후에 집으로 부쳐

주실 거란다. 막상 쓰려고 보니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할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쓰는 편지라 두서없는 글을 몇 자 적어보았다.

다음 날, 각자 자기 가면에 마음껏 색을 칠해보았다. 알록달록 각양각색의 가면이 완성되었다. 각자 써보고 설명하고, 질문하고, 해석하고, 미술치료, 심리치료들 같았다. 정말 즐겁고 보람된 수련회의 1박 2일 일정이 끝났다.

격리실, 소아암실이 있는 병동, 다들 올망졸망하고 까까머리라 남녀 구별이 쉽게 되지 않지만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짠하다. 나의 환자는 10세 여아로 림프성 백혈병 때문에 골수이식을 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골수기증자가 나타났으면 하고 무작정 기다리는 상태다. 이식을 하기 위해 강도 높은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구토, 설사, 고열에 시달리며 몹시도 괴로워한다. 생명은 고귀한 것이다. 이겨내라고 다독거려주지만 아픔이 고통을 함께 해줄 수는 없다. 피눈물을 흘리며 잘도 참아 한고비 넘겼다. 제대혈 치료를 시작했다. 많은 수술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각처에서 도와주고 군인장병들도 협조해준다. 며칠 후 이식을 하기 위해 무균실로 옮겨가야했다. 어쩔 줄 몰라 힘들어하는데 메시지가 왔다. 팀장님이 격려와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보내주셨다. 치료 잘 받으라고, 환자아이는 그러겠노라고 말하면서 한층 기분이 명랑하고 쾌활해졌다.

그런 마음도 잠깐, 무균실 앞에 도착하니 스산할 정도로 고요하다. 환자도 겁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괜찮다고 등을 토닥거렸지만 나도 겁이 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쏴 하고 소독액이 뿜어져 나오니 아이는 소리 내어 울면서 나에게 매달린다. 안쓰럽다. 병실에 들어오니 갑갑하다. 밀폐된 공간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우주인처럼 가운을 입고 눈만 빼꼼이 내놓은 상태가 답답하다.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며칠 후 골수 이식을 하였다. 아이는 힘이 들어 보여 측은하기 그지없다. 핏기 하나 없는 입술은 갈라지고 터지고 고열, 설사, 구토, 붉은 반점, 가려움 현상이 나타난다. 아이는 고통을 참지 못해 울부짖는다. 옆에서 간호하는 나도 고통스럽고 힘이 든다. 생사의 길목을 넘나들면서도 잘 견디고 병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강하다. 조금은 차도가 있는 듯하다. 곧 종료하는 날이다. 힘겹게 입을 연다. “선생님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눈물이 핑 돈다. 힘겨웠던 순간이 다 사라지고 보람된 일을 했구나하는 자부심을 느꼈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신 재단에 감사하며 앞으로 힘닿는 데까지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고 싶다.

 

대구지역/오연수 간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