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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사] 나의 손과 마음이 할 수 있는 일
  • 분류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4-05-29 11:13:45
  • 조회수
    2664

병원에 첫 출근을 하니 환자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간호사실에 가서 문의를 해보았더니 환자가 다인실로 이동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환자를 새로 만날까 하는 기대감으로 병실에 들어서니 환자들 중 제일 나이 어린 환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환자는 뇌출혈로 인해 입원을 한 후 뇌수술을 받았는데 아직 제정신이 돌아오질 않았고 말도 두서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목욕부터 시키고 환자복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왼쪽에 마비가 와서 부축을 해주며 운동 삼아 복도를 돌다가 식사를 도와주고, 물리치료실 갔다가 하늘정원으로 산책을 다니며, 친해지기도 하였습니다. 환자의 말이 아빠도 입원했고, 친구들도 입원하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입원했다면서 병문안을 가야한다고 횡설수설 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이렇게 되어 정신이 없는 걸 보니 저로써는 마음 한구석이 짠했습니다.

그 환자는 “정신만 돌아오면 책도 잘 읽을 수 있고, 말도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침도 흘리지 않을 거구요.”라고 했지만, 주변에서는 정신없는 환자라며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헛소리 한다며 야단을 맞기도 해서 여간 안쓰럽지 않았답니다. 환자 자신이 가끔은 자신을 정신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등 의기소침해 하기도 한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무얼 하고도 잘 잊어버리고 금방 무엇을 했는지 왜 약속을 했는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생각이 나지 않으니 당사자도 가끔은 답답하기도 할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운동도 하고 말도 조리 있게 하도록 유도를 했건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저를 누나라고 했다가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시골에 환자어머니가 계시는데 환자가 어머니와 만나면 늘 크고 작은 일로 분란이 생겨서 병원 내에서도 환자와 환자 어머니 사이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시골로 가게 되면 병원에는 다시 오지 않겠다며 어깃장을 놓을 때도 있고, 아픈 것은 참기 어려워하지만 천성이 밝아서인지 어린 아이 같기도 합니다. 또 단 1분도 말을 하지 않으면 갑갑해 해서 하루 종일 말을 시키고 묻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어디에서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지 궁금하기까지 했습니다. 저와 다투는 일은 없었지만 말만 조금 줄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잘 해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환자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부산에도 눈이 왔습니다. 몇 분간이긴 했지만 정말 탐스러운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1층 로비로 가서 눈 구경을 했습니다. 눈이 오고 나면 길도 더러워지고 사람들이나 차들이 이동하기 힘들어지지만 부산같이 따뜻한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내리는 함박눈이다 보니 눈 구경을 하는 모든 이들이 애들 마냥 다들 기분 좋아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기쁜 일이 많진 않지만 근래 들어 참 좋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간병사라는 일을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었고, 멋모르고 시작했습니다. 내 작은 정성으로 환자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힘이 되겠다고 시작했지만 간병일은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지치게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다양한 질병에, 다양한 성격의 환자들을 만나면서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기도 했습니다. 환자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도움이 되려고 하는 말과 행동들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저는 훌훌 털어버리는 성격이 못 되기 때문에 환자들의 말 한마디에 며칠씩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는 웃지도 못 하고 골난 사람마냥 지내는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성격에 얼마나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더욱 힘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이 흐른 지금은 환자들이 상처 주는 말에도 웃으면서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해야 환자들을 이해하고, 병세가 나아지게 할까를 생각하며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진심어린 행동들에 처음에는 거부감을 가지던 환자들도 진실은 결국 통하는 것인지 간병기간이 끝나갈 즈음에는 저와 조금이라도 더 얘기하려 한답니다. 그간 속에 쌓아둔 말과 환자의 과거 이야기, 자식 이야기 등, 그 한스런 말들을 스스럼없이 해줄 때는 환자가 날 믿고 있구나 싶어 내 마음도 열리고, 들어주는 것도 말벗이다 싶어 열심히 들어주게 된답니다. 이렇게 서로 교감이 이루어지면 환자들은 나의 병간호에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 보이고, 이런 환자로 인해 내 자신의 건강함에 감사하고 아직도 내 손이 필요함에 고마움을 느끼며 보람도 느끼게 됩니다.

처음에는 속상하고 힘들 때마다 같이 일하는 간병봉사단 식구들에게 푸념 아닌 푸념과 짜증 섞인 말로 속상함을 털어 넣곤 했습니다. 그러면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빙그레 웃으면서 하소연을 다 들어주시고 시간이 약이니 세월이 흘러야 된다며 다독여 주시던 것에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보잘 것 없지만 저의 손과 마음이 필요한 환자들의 건강과 우리 간병봉사단 식구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부산지역/ 정윤경 간병사